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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생활 법률 가이드

전세·월세 수리비, 집주인과 세입자 중 누가 내야 할까? 법원 판례로 정리한 진짜 기준

고장 난 집, 수리비는 누구 책임일까?

: 임대인과 임차인이 알아야 할 수리비 분쟁의 핵심

 

전·월세로 집을 빌려 살면서 겪게 되는 문제 중, 가장 빈번하고 민감한 갈등 중 하나가 바로 수리비 부담 주체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보일러가 고장이 나거나, 싱크대 수전이 새거나, 창문이 파손됐을 때, 과연 이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는 단순한 금전 문제가 아닌 계약의 해석, 주거의 책임, 사용권한의 범위 등 다양한 법적 요소가 얽혀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 임대인과 임차인의 입장이 정반대로 갈린다는 점이다.
임대인은 고장 내놓고 왜 나더러 고치라고 하냐고 하고,
임차인은 당연히 집주인이 고쳐야지 내가 왜 고쳐? 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런 갈등은 종종 법정까지 가는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임대인과 임차인 각각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실제 분쟁 사례와 판례를 통해 어떤 기준으로 수리비 책임이 나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집주인과 세입자간 수리 갈등

1. 임대인의 입장: “집을 빌려준 것이지, 계속 관리해주기로 한 건 아닙니다”

 

많은 임대인들은 주택을 빌려줬을 뿐, 집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장을 책임지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전세나 월세 계약이 몇 년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사용하는 설비나 가전이 자연마모나 사용 중 고장이 발생하면
사용한 사람이 수리하는 것이 상식 아니냐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임차인이 사용하는 중에 변기 고장, 전등 교체, 문고리 파손, 커튼 봉 낙하 등이 발생했을 때
이걸 전부 임대인이 고쳐야 한다면 너무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보증금이 적은 월세 세입자일수록 집을 함부로 다루는 경우도 있어,
임대인 입장에서는 수리비까지 책임지게 되면 경제적 손해가 너무 크다고 토로한다.

2. 임차인의 입장: “집이 낡아서 그런 건데 왜 내가 부담하죠?”

반대로 임차인의 입장은 간단하다.
집은 임대인의 소유물이고, 나는 돈을 내고 그 집을 빌린 것이니
집 자체의 노후나 내가 고의로 훼손한 게 아닌 부분의 고장은 임대인이 고쳐줘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입주한 지 두 달 만에 보일러에서 누수가 생겼다든지,
세면대가 갑자기 깨졌다거나,
벽지가 곰팡이로 벗겨진다거나 하는 일은
명백히 임차인이 만든 문제가 아닌 건물 자체의 노후 문제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임차인에게 수리하게 하거나, 심지어 수리하지 않으면 계약 위반으로 간주하겠다는 임대인이 있다면
그건 임대인의 책임 회피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3. 법의 판단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임대차 계약에서 수리비 분쟁이 생겼을 때,
법원은 ‘고장의 원인’, ‘설비의 성격’, ‘사용상 불가피성’, ‘계약서의 내용’ 등을 종합해 판단한다.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안전하고 사용 가능한 상태의 목적물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 따라서 임대차 기간 중 발생한 건물 자체의 하자나 구조적 문제, 내구 연한이 지난 설비의 고장 등은 임대인의 책임이다.
  • 반면, 임차인의 사용 중 과실로 발생한 파손이나 경미한 유지보수는 임차인의 책임이다.

이 기준은 대부분의 법원 판결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4. 실제 분쟁 사례 ① – 보일러 고장, 수리비 누가 내야 할까?

✅ 사건: 서울중앙지방법원 2014가단511350 판결

임차인이 입주 3개월 만에 보일러에서 누수가 발생했고,
수리비로 약 45만 원을 지불한 뒤 임대인에게 그 금액을 청구함.
임대인은 임차인이 사용하다 고장낸 것 아니냐고 반박함.

그러나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보일러는 주택의 주요 설비로, 통상적인 사용 중에 발생한 고장은 임대인이 수리해야 한다.
단, 임차인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고장낸 것이 아니라면,
그 수리비는 임대인이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

📌 결과: 임대인이 전액 부담하도록 판결

5. 실제 분쟁 사례 ② – 샤워기 호스 파손, 임차인의 책임?

✅ 사건: 수원지방법원 2018가소15786

임대인은 퇴거한 임차인에게 샤워기 호스와 세면대 수전을 교체한 비용으로
약 18만 원을 보증금에서 공제하고 반환하지 않음.
이에 임차인이 소송을 제기함.

법원은 이렇게 보았다:

“해당 설비는 생활 중 자연스러운 노후로 인한 마모가 인정되고,
특별한 고의·과실이 없는 한 임대인의 책임이므로 보증금에서 일방적으로 공제하는 것은 부당하다.”

📌 결과: 임대인이 보증금 공제한 금액 반환 판결

6. 계약서에 명시되었더라도 무조건 효력 있는 건 아니다

임대차 계약서에는 흔히 “임차인 사용 중 고장 시 수리는 임차인의 책임으로 한다”는 문구가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이 있다 하더라도,
법원은 계약 조항이 과도하게 불리하거나 법적 원칙에 반하는 경우 무효로 본다.

즉, 계약서에 명시된 조항이 있더라도
고장의 원인이 임차인에게 없고, 그 설비가 건물에 필수적인 구조물일 경우
그 수리비는 임대인이 부담해야 할 수 있다.

7. 갈등을 줄이기 위한 조언

임대인을 위한 팁:

  • 입주 전 시설 점검 기록이나 사진을 남기고 계약서에 첨부하는 것이 좋다.
  • 수리가 필요한 항목은 계약 이전에 미리 보수하고 그 사실을 명시한다.

임차인을 위한 팁:

  • 고장 발생 시에는 사용기록과 고장경위, 수리 내역을 문서화하는 것이 좋다.
  • 임대인에게 먼저 고지를 한 후 수리하고, 카톡·문자 등 대화 내역을 보관한다.

8. 결론: 명확한 기준보다는 합리적인 소통이 먼저입니다

수리비 분쟁은 정답이 명확하지 않은 회색지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를 ‘상식’이라는 잣대로만 판단하면
오히려 갈등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법은 기본적으로 공정과 상식에 기반한 책임 분담을 원칙으로 합니다.
집의 구조적 하자나 고령화된 설비로 인한 문제는 임대인의 책임,
반면 일상적 관리나 사용상의 주의 부족은 임차인의 책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계약 당시의 명확한 의사표시와 기록,
그리고 고장 발생 시의 신속하고 투명한 소통입니다.
그것이 결국 양측 모두가 분쟁 없이 주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